잔디밭이 펼쳐진 공원이 있다. 아기자기한 분수대가 있는 공원이라고 해도 좋고, 아예 아무것도 없는 그냥 광장이라고 해도 좋다. 광장 한켠에서 누군가 신나게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흘긋거리며 지나가던 사람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더니 신명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중 일부는 흥에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한바탕 '놀이'가 펼쳐진다.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보세-" 하는 건 분명 우리네에게도 있었던 문화인데, 어느새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외국에 갔을 때 돌아다니면서 가장 신이 나고 부러웠던건 길거리 음악회였고 길거리 클럽이었다. 이탈리아의 고풍스런 성당들이 멋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작은 광장이라도 밤이건 낮이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꼭 있고 그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나름대로 제 흥에 못이겨 춤을 추는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일본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학교 캠퍼스에서 애들이 음악 틀어놓고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모습이었다.
맛있는 치킨을 사주겠다길래 가서 먹고는, 그대로 헤어지긴 좀 아쉬워 뭘할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서울광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씩, 과자 조금을 사가지고 갔더니 마침 '하이서울페스티벌'기간이었다. 알고보니 시청앞 서울광장에서는 8일동안 다른 테마로 <팔색무도회> 중이었는데 오늘 테마는 춤-음악-열정(Battle). 살펴보니 운좋게도 가장 기대되는 테마였다. 여러 댄스팀과 장기하와 얼굴들, 윈디시티가 출연했다. 관심있던 두 밴드에다가, 요즘 내 취미생활 덕분에 살사나 자이브 등도 이전보다 더 재밌게 봤다.
광장엔 사람이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휑하지도 않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무대앞에 서서 환호했고 뒷편으론 끼리끼리 적당히 모여앉아 우리처럼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게임을 하고 있기도 했다. 김동률 이적의 카니발 콘서트때처럼 여러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놀았다. 춤을 추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장난을 치고는 쏜살같이 도망가기도 하고. 또 한 순서가 끝날때마다 '봄바람 댄스'라는 율동시간이 있었는데, 한번만 보면 누구나 다 함께 할 수 있는 쉬운 거였다. 처음엔 진행요원들만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다 같이 따라했다. 사람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엔 다른 사람 눈 의식하지 않고 즐겼다. 어떤 사람은 혼자 서서 흔들거리며 음악을 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가면분장한 이들과 손을 마주치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무리지어 온 젊은 사람들은(그들도 어느 동호회인듯 했는데) 저들끼리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춤을 추면서 웃어댔다. 화면에 잡힌 무대 앞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니 머리가 하얀 할머니부터, 아빠 어깨에 무등을 탄 꼬마숙녀까지, 말그대로 남녀노소가 모두 모였다. 이걸 캠코더로 찍고 있는 외국인들도 참 많았고.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있어 꽤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오고갔는데도 떨어져있거나 구석에 쌓여 있는 쓰레기는 거의 볼수도 없었다.
초여름처럼 무더웠던 하루, 시원해진 밤에 그 광장에서 쏟아내는 우리들의 이 에너지가 난 너무 좋았다.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럴때 보면, 이 에너지들로 우리는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은 허황되지 않은것 같다.
그런데 우리들과는 관계없이, 마지막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윈디시티가 마지막 순서였는데, 첫번째 곡을 끝내고 나서 보컬이 이런 말을 했다. "축제, 페스티벌이라는 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하는거죠. 윗사람들이 하라고 마련해 놓은 이런 자리가 아니라, 촛불집회가 진정한 시위인것 같습니다 전!" 다음곡을 끝내더니, 용산참사 100일 얘기를 꺼내며 잊지말자고도 했다. 뭐 장광설을 늘어놓은것도 아니다. 그냥 멘트를 하듯이 슬쩍 언급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 곡이 끝남과 동시에 인사도 하지 못하게 마이크를 뚝 끊어버리더니 녹음된 음악을 크게 틀고서는 사회자가 서둘러 오늘의 순서가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거다. 앞으로 남은 축제기간도 많이 참여해 달라면서. 윈디시티 멤버들이 황당해하며 무대에 남아있자 수고하셨다며 서둘러 정리해버린다.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고, 시간관계상 버스를 타러 가느라 그 이후는 보지 못했다. 글쎄, 그사이에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그렇게 한건지, 아니면 운영하는 측에서 알아서 기어주신건지, 알길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자리를 준비 잘 해놓고 대체 뭐람. 그냥 차려주는대로 구경하고 먹기만 해라? 자유로운 문화와 의사의 소통은 막아버리겠다? 진중권씨 표현대로, 오프라인에서 집회하는 사람들이 "비옷이 필요하다"라고 외치면 온라인의 사람들이 현장으로 퀵서비스를 보내는 시대다 지금은. 지금이 어떤 시댄데,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인터넷 인프라를 가진 이나라에서, 설마 그런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해도 오냐 그런가보다 하고 속아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스스로들이 그렇게 믿고 싶은건 아니고?
다른 거창한게 축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이런 축제문화가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너무너무 반갑고 즐거웠는데, 마지막이 너무 씁쓸했다.
날짜 : 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오후 7시 장소 : 아람누리 아람극장 중국 국립중앙발레단
(모든 사진은 홈페이지에서..)
'세계적인' 이라는 호칭은 역시 아무데나 붙는게 아닌가보다. 세계적인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발레 <홍등>, 굉장히 보고 싶었는데 베일을 벗은 작품은 역시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감각적이었다. 예전에 본 영국 국립발레단의 공연도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화려했는데, 그건 의상과 장신구들, 무대장치들 자체가 화려 했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의상같은건 그냥 심플했는데 워낙에 색채들이 강렬하고, 중국 답게 사소한것 부터가 스케일이 아예 달랐다. 근데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그런지 (잘 모르지만) 완전히 중국스러웠던 음악이나 경극 등이 더 익숙/친숙하고 그랬다. 발레는 잘 모르지만,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뛰어나고, 몸의 선이나 움직임이 굉장히 부드럽고 유연했던것 같다. 장면의 전환은 빠르지만 억지스럽지 않았다. 장예모 감독 연출 답게 무엇보다도 색채가 너무 아름다웠다. 압도하는 붉은색과 천장까지 가득 채우는 홍등, 열정의 빨간색 옷을 입은 셋째부인과 질투의 노란색 옷을 입은 둘째부인 등등.. 더 주저리 주저리 쓰기 보다는 사진 몇장으로 ㅋ
이런장면 참 좋다. 빛만을 이용해 연출한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에서도 그림자를 이용한 장면이 참 좋았는데.
오후에 갑작스레 Mr. M Strobl과 경복궁, 민속 박물관 나들이. 두시간도 넘게 많이도 걸었다. 생각보다 잘해놨던걸.
그러고 나서 퇴근 즈음 또다시 갑작스레 정해서는 야구장으로 고고씽~ 역에서 2/3 가격에 암표를 구입했는데 출입구 앞에서 1/3 가격으로 파는걸 보고 살짝 실망한 후..ㅋ 이건 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순 없었다- 들어가서 맨 꼭대기 뒤에서 보이지도 않는데 겨우 끼어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막 점수를 내주더니 4:0.. 거기선 도저히 못보겠다 싶어서 앞으로 앞으로 내려가 운좋게 비어있던 통로를 점령 +_+
그 다음회부터 각종 루타와 도루를 섞어가며 점수를 내더니 금방 역전해버리더라. 4회 이후엔 공격은 오래하고 수비는 금방 끝나버렸는데, 그러다 보니 앉아서 쉴 새가 없었다 ㅋ 오늘 게임이 좀 재밌기도 했지만, 역시 가만 앉아서 봤을 때 보다는 같이 소리지르고 응원하는게 너무 재밌었다 ㅋ 스트레스 따위 다 날려 주시고~ 으흐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야구장에 와본게 오늘로 세번짼데, 100% 승률을 자랑한다 ㅋㅋㅋ
정원보다 더많이 들어온거 같았던 만원 관중 속에서, 월드컵때의 응원을 떠올리게 하는 응원전과 함께, 다리는 무지하게 아팠지만 굉장히 즐거웠다. 야구장 오는게 슬슬 재밌어 질라고 하는데 이미 시즌은 끝났다는게 좀 ㅋㅋ
클리닝 타임때 바다
오늘, 오후 내내 다리를 너무 과하게 사용했다; 덕분에 지금 양쪽 종아리 아래는 내거가 아닌거 같다 ;ㅇ;
<백조의 호수>는, 어릴때 볼쇼이 등에서 아이스발레로도 몇번 보았고, 정통 발레로도 보고, 매튜본의 댄스뮤지컬로 남자 백조들 공연도 보았다. 그런데도 원작 내용을 모른다는게 더 이상하다. 매번 내용이 꽤 달라서 그런거 같다. 아이스발레로 본건 사실 기억이 거의 안나서.. 기대가 많이 됐다.
어쩜 이렇게 색이 안예쁠수가 -_-;;;;
호수를 그리는 배경이 동화스럽게 예뻤다. 하지만, 무대가 너무 작았다는게 아쉽다. 무대 위에 얼음판을 따로 만들다 보니 더욱 그렇다. 피겨스케이팅이 오버랩되면서, 김연아 선수와 페어경기에 나온 선수들이 빙판을 신나게 누비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한정된 작은 공간에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조금은 답답했다. 아이스발레다 보니 발레하면 떠오르는 팁토 같은건 볼수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언니말대로 대신 얼음위를 쭉쭉 움직이는건 시원스러워 보이더라.
음 그리고.. 아, 왕자의 지조란. 그렇게 허무하게, 쉽게, 가볍게 바뀌다니. 남자란 그런것일까. ㅋㅋㅋ
<백조의 호수>들 중, 매튜본의 공연이 가장 독특한것 같다. 물론, 남자 백조들이라는 것 자체가 주목할만 하지만, 주로 전달받은 내용도 꽤 상이하다. 무대도 안무도. 그걸 볼때, 나름대로 머리가 울리는 듯하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서 보아왔던 <백조의 호수> 중에선 여전히 그게 최고다.
아이스발레는 여름용. 얼음지치는 소리가, 거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굉장히 시원했다. 언니야, 덕분에 재밌게 잘보았어^ㅡ^ 또 내가 열심히 응모해볼게 낄낄낄.
새라새 극장 자체가, 이런 실험적인 공연을 위한 공연장으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공연장이라고 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제작한 디지털 퍼포먼스. 새라새극장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디지털 퍼포먼스라는 생소한 것도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참신함과 부족한점들이 동시에 부각된 공연이었다 하겠다. 무대 한가운데 구멍의 오케스트라(?)는 각종 관현악기들 대신에 여러대의 컴퓨터와 모니터들이 놓여있었다. 2040년을 배경으로 하여 첫 씬은 배경에 우주가 투영되는데, 여러 막들을 통해 3차원의 공간으로 느껴지는게 신기했다. 물론.... 예전 CG들처럼 다소 허술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공연장은 스피커가 굉장히 많은것 같았다. 유성이 지는 소리, 별이 반짝이는 소리, 네트워크로 들어가는 소리 등이 머리 위에서 양 옆에서 앞에서 통통 튕기듯 돌아다니는게 실감이났다. (이곳은 여러 구역으로 구분되어 개별 음향을 재생할 수 있는 지향성 스피커들로 이루어져, 같은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서로 다른 음악을 듣게 한다고 한다!!!!) 또, 새라새극장은 가변형 극장이다. 그거랑 관계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눈으로는 대충 3D 화면이 보이고, 소리가 꽝꽝 울리면서 의자도 슬쩍 떨려서 아이맥스 영화같은걸 본다면 이거랑 대충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었다.ㅋ
관객 참여도 많았다. 마법사가 갑자기 뛰어내려와서 관객 하나하나를 코앞에서 들여다본다. 난 모자를 쓰고 갔는데, 그 앞에 갑자기 들이대서 깜짝 놀랐네.ㅋ 중간에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주는데 거기로 전화를 걸면 공연장내 네트워크로 접속이 된다. 그럼 앞의 스크린에 있는 퍼즐 조각이 각자에게 배당이 되고, 그걸 핸드폰으로 움직여 맞출수가 있었다! 와우!! 뿐만 아니라, 마법사가 신타지아게이트로 들어가면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과 접속을 한다. 서로 인사를 하고, 그분이 간질간질~ 하면 마법사는 마구 간지러워 하고. 화면속의 분이 보여준 전화번호로 관객중 한사람이 전화를 걸자 통화를 하며 서로 손을 흔들기도 헀다. 이런 하나하나들이 모두 디지털공연인거다. 신기했다.
사실 한시간정도밖에 안하는 공연시간은 너무 짧았고, 어떤 장면인지 미리 제목으로 다 알려주는데도 스토리 연계가 잘 안됐다; 디지털 공연, 참신하고 신기한것도 많았지만, 중간중간 뜨는 느낌도 있었다. 시작할때 구본철교수님께서 난타나 점프같은 공연이 되길 희망한다고 하셨다. 아직은 시작단계니 미흡한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지금껏 없었던 실험정신 또한 돋보였던것 같다. 난타나 점프가 처음에 그러했던것처럼. 다듬다보면 그런 대중적이면서 좋은 공연이 되리라 믿는다.
'현을 뜯다'라는 뜻을 가진 플럭(Pluck)은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The Prestigious Tap Water Award’를 수상한 현악 트리오. 바이올린의 아드리안 가렛과 비올라의 존 레건 그리고 첼로의 시안 카디파치. 재미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무려 시험기간임에도! 내한공연이 내일까지 인지라 과감하게 질러줬다 +_+ 흐흐흐 게다가 싸게 보여줄게 이리와 이리와 살살 꼬시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수가 있겠어ㅋㅋ
머나먼 창동까지 갔는데, 공연장은 그닥 크지 않았다. 바로 옆에 북악산(북한산인가?ㅋㅋ;)이 멋지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공연전까지 사진찍으며 돌아댕겼다. 가기 전에 공연정보를 보았더니 꼭 맨앞자리에 앉아서 보랬는데, 다행히 맨앞자리 +_+ 크크크
Program 보기
1막 45분
Mozart - Magic Flute Overture
Villoldo - El choclo
Satie - Gymnopedie
Handel - Zadok The Priest
Saint Saens - The Swan
Delibes - Flower Duet
Ponchielli - Dance of the Hours
Vivaldi - Gloria
Mozart - Lacrimosa Mozart - Rondo alla turka
Beerhoven - Moonlight Sonata
Parton - I will always love you
2막 40분 Handel - Arrival Queen of Sheba
Hermann - Psycho theme
Dvorak - Humoreque
Vaughan Williams - The Lark Ascending
Verdi - Di Quella Pira
Mozart - Queen of the Night
Vivaldi - Winter 2ndmovement
Monti - Czardas
Porter - Why can't you behave?
Trad - Orange Blossom Special
Tchaikovsky - 1812 overture
나무 화분들 뒤에서 연주를 하면서 나뭇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노려보고, 연주를 하면서 다리로 의자를 밀고, 끼고, 앞으로 나오겠다고 애를 쓰고, 헨델의 음악에 맞춰 안무를 짜고, 달걀에서 태어난 병아리 디에고와 글로리아를 차에 태워 보내고, 병아리 디에고가 죽자 추모곡을 연주하고,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디에고를 데려가고,ㅋ Rondo alla turka를 엄청 느리게 연주하다가 점점 빨라지더니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빠르게 연주하고 그래서 바이올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관객석으로 내려와 신발을 빼앗아가고, I will always love you를 열창하고. 한창 연주를 하다가 재정이 딸려서 못하겠다며 뚝 끊어버리고, 지나치게 심각한 얼굴로 표정을 구겨가며 연주를 하고, 히치콕의 섬뜩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데 자기들이 찍은 흑백영화가 뒤에서 상영되고, 자기들 쉬는시간이라며 소주를 원샷하는가 하면 (물론 물이겠지만ㅋ) 다른 사람이 뒤에서 팔역할을 하며 앞사람에게 케잌을 먹이고 그 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2명이서 3중주를 하는걸 보여주겠다며 입으로 현을 물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아리아를 립싱크하고, 마지막 곡에서는 빵집에서 주는 폭죽을 폭폭 터뜨리고 종이 꽃가루가 머리위에서 떨어지고 신기한 공들이 날아다니고.
분명 음악들은 많이 들어본 귀에 익은 것들이었는데 하나같이 그동안의 고정관념과 형식을 깬 연주였다. 난타는 부엌에서 요리를 가지고, 점프는 태권도와 무술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면 플럭은 클래식을 가지고 노는 non verbal performance다. 코믹스럽게 한다고 해서 연주 실력이 절대 딸리는 것도 아니었다.
한명은 리더라며 잘난척은 다하면서 계속해서 실수를 지적하지만 실은 자기도 똑같은 실수를 계속하고, 또 한명은 처음부터 어리숙하게 허허 웃으며 계속 간식만 찾지만 장난 많고 웃는게 너무 귀여웠고, 홍일점은 앞의 두사람이 자기들이 만난 사람중에 가장 못됐다며 엽기 뚱돼지라고 부르는데 멤버들에겐 항상 거칠고 까칠하고 카리스마 대왕이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씨익 웃었다. 노래와 춤과 표정, 다 매력적이야.ㅋ
어렸을때 미스터빈을 아주아주 좋아했었다. 다 녹화해서 외울때까지 보곤 했는데. 그런 영국식 코미디의 진수.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은이가 3년전인가, 창극을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며 꼭 봐보라고 했었다. 사실 그때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근데 이번 아람누리 개관기념예술제중에 심청전을 주제로한 창극이 있어서 얼른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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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 울청, 놀청, 뛸청 -- 창극 <淸>을 보고 禹漢鎔(서울대 교수, 소설가)
창극 <청>의 첫날 공연을 보았다. 전반부는 이전에 보았던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세부사항이 보완된 것은 극 전체의 완결성을 위한 배려가 생각된다. 그런데 후반부는 이제까지 보았던 ‘심청’들과는 상당히 다른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예술에서 반복, 되풀이는 죽음이다. ‘심청’은 이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노래하고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것은 판본마다 달라지는 새로움 때문이다. 새로움이라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다. <청>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무대와 연출과 창법과 연기가 두루 새롭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예술 창조의 과정은 이전 것을 깨뜨리고 새것을 만들어내는 ‘혁명’의 과정이다. 그러나 예술을 수용하고 감상하는 과정은 일종의 길들이기의 과정이다. 길들이되 ‘서로 길들이기’이다. 쌩-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와 여우가 친해지는 과정을 불어 재귀동사를 써서 ‘서로 길들이기; s'apprivoiser'로 규정하는 것은 예술의 수용과 연관지어 생각해도 핵심을 찌른 말이다. 관객은 어느 장르든지 작품을 자주 보아야 익숙해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자주 보고 듣는 것만으로 능사가 아니다. 좋은 작품, 예술적 수준이 있는 작품을 자주 보고 들어야 예술적 감각이 풍성해진다. 아울러 예술의 인식을 명확하게 하고 깊게 하는 데에는 경험의 양적 축적만이 문제가 아니라 감상 대상의 질적 수준이 문제가 된다. 예술적 감수성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에 공연된 <청>은 창극 관객의 감수성을 이끌어 올리는 데 충분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인의 인생 인식에서 탄생이 죽음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 그것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원형질적인 것이다. ‘청의 탄생’과 모친의 이른 죽음은 이 작품의 전체 구조를 형성하는 하나의 골간이다. <청>은 아이러니를 통한 비극의 초월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무대에서 중점이 놓이는 것은 탄생보다는 죽음을 다스리는 ‘제의’이다. 탄생이 고독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면, 죽음을 다스리는 과정은 ‘제의성’을 지닌다. ‘출생과 장례’라는 제목이 붙은 제1장에서 ‘출상 장면’은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는 익숙한 문화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전체 구성 가운데 ‘출상장면’의 비중을 긴장력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맹인의 운명, 아내의 죽음 등 철천지한, 혹은 통한의 피울음을 쏟아놓을 만한 장면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에 ‘더늠’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적 균형감각이 떨어진다면 그러한 효과는 반감된다. 한마디로 이 장면이 과도히 부각된 느낌이다. 철두철미한 비극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질 가운데 하나다. 존재의 괴멸로 이끌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는 소설 작품이 없고 보면, 그것은 우리들 미학의 양질 부분이라 해야 옳다. 그렇다면 비극성보다는 제의상의 다른 요소를 부각하는 방법도 고려함직하다.
아이러니와 함께 드러나는 ‘익살’을 좀 더 살릴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하리라. 시주책에 이름을 올리고 좋아서 그 책을 받아서 거꾸로 돌려들고 읽는다든지, 무대에 냇물로 상정된 마룻장을, 대사가 부채질을 해서 올라오게 하고는 몽은사 부처님의 ‘영검’이라고 눙치는 장면도 익살맞고 재미있다.
청이 물에 빠지는 장면은 명품이다. 통곡과 아수라장같은 훤소와 그 뒤에 이어지는 정적. 그 정적 한가운데를 섬세하게 가로질러 나아가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이들의 절묘한 조합은 극적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제 1막 마지막 장면은 창극의 연출력 측면에서 압권이다. 무대 양편에서 흰구름이 조용히 밀려나와 바닥에 깔리면서 소복을 한 청이 천천히 걸어나와 무대 저편으로 걸어서 소실점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 거기에 하늘에서 내려주는 꽃비. 꽃잎파리가 팔랑거리며 영혼의 마른 잎새처럼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오래 보여주어서는 안 될 비의를 들키기라도 한 듯 급히 막이 내려온다. 환상에 빠져있던 관객들은 조였던 가슴에서 후유 심호흡을 뱉아낸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제 2막의 마무리에도 변형되어 나타난다. 맹인잔치에서 눈을 뜬 아비 손을 잡고 무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로질러 건너 무태 저편으로 사라지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인생의 두 길을 생각하게 된다. 청이가 간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청의 아버지가 걸은 고단한 삶의 길이다. 이 장면에 와서 관객은 <청>을 보는 과정이 자신의 삶의 길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는 화두를 지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청>을 보는 동안 소리에 압도되어 무대장치나 소도구에 마음쓸 겨를이 없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런 쪽에 매우 섬세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의 아버지는 무자생 쥐띠다. ‘쥐’와 공양미 삼백석의 ‘쌀’의 조응! (과도해석일까), 뺑덕어미와 황성가는 길에 만들어 놓은 장승-길가의 장승 같은 인생, 그리고 무대 왼편에 세운 솟대-맹인의 소망, 등 예사롭지 않은 배치다. 그리고 맹인잔치를 알리는 방도 재미있다. 무대전체를 내리닫이로 압도해 오는 國泰民安 時和年豊 王后慶宴 盲人皆參이라는 방을 휘장으로 꾸민 것이 쉽지 않은 무대감각이다. 심청이 저승에서 옥진부인이 된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 혼을 부르기 위해 ‘씻김굿’ 형식을 빌려오고, 박병천 명인을 직접 등장하게 한 것 또한 연출기량을 돋보이게 하는 국면이다.
<청> 전체를 보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우리 노래에 접하게 된다. 도창을 맡아 하는 안숙선 명창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일품이다. 거기다가 출상장면의 향두가, 남경선인들의 뱃노래, 청이 왕비로 간택된 후 ‘박’을 두드리면서 추는 춤에 더불어 부르는 화초가, 맹인들이 황성 맹인 잔치에 가다가 쉬는 동안에 부르는 경상도 밀양 아리랑, 전라도 진도 아리랑, 제주 오돌또기, 경기 창부타령, 그리고 각설이타령 등 푸짐한 노래를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이런 노래를 통해 소리꾼들의 솜씨를 보는 재미도 재미어니와, 함께 판에 어울릴 수 있다는 참예(參預)와 동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서양의 오페라를 떠올리게 된다. 오페라에서 어느 장면에서 따내어 독립된 노래를 부르는 ‘아리아’를, 창극에서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춘향가>의 ‘사랑타령, <흥부가>의 ’돈타령‘ 그런 것들처럼 창극이 공연되면 그 창극의 얼굴에 해당하는 노래를 만들고 널리 보급하여 누구라도 부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인 판소리가 이제 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판에 그 부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식은 죽 갓 둘러 먹기’ 아니겠는가.
<청>의 철학, 삶과 죽음, 슬픔을 희망으로 전환하는 예술 구도, 희생과 구원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자 한다. 다만 창극 <청>이 여러 버전으로 ‘새끼치기’(장르분화)를 해서 <청>그룹이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활력이 넘친다. 전반부가 좀 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원본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 도전하는 것이 예술 아니던가. 과감한 상상력의 마름질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청>을 처절한 비극으로 구성하여 울음으로, 통곡으로 이어지는 창극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국 최고의 비극으로 부상할 수 있을 터. 상여놀이, 맹인들의 노래자랑 등처럼 놀이판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짤 수도 있지 않겠나. 놀이판에서 관객들이 같이 어울려 흥을 돋구는 그런 창극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소리는 최소화하고 춤을 중심으로 변형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단무 속에 녹아나는 슬픔을 관객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름하여 ‘울청’, ‘놀청’, ‘뛸청’ 그런 식으로 새끼치기를 해야 창극이 살아난다.
자식없는 창극이 오래가자면 자식을 자주 낳아야한다. 말썽도 부리고 부모(판소리) 복장 뒤집는 짓도 하리라. 그러나 대를 이어가자면 그래야 한다. 자식들이 부잡스러워 당하는 수모는 받아드릴 아량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새끼치기를 하다보면 소설 <심청전>, 판소리 <심청가> 등의 정전(正典)을 훼손하는 불손한 짓이라 핀잔을 하는 이가 있으리라. 그러나 정전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서양문자로 장난삼아 말하자면 정전(canon)은 대포(cannon)이다. 깨고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야 새로운 가통이 선다. 가난한 <청>이 가멸은 <청>으로 환생하는 길에 노자를 보태는 데 진땅 마른 땅 가릴 일이 아니다.
역시, 난 창극은 처음이라 창이 어떤건지 어떤것을 주의깊게 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체 갔다. 그러니까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 맘대로인것!ㅋㅋ
극은 청이의 탄생과 어머니 곽씨부인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곽씨부인의 장례 장면이 곧바로 이어지는데 앞장선 상두꾼 할아버지의 창이 매우 구성지게 들렸다. 청이가 인당수 제수로 팔려가는 장면과 물에 뛰어드는 장면, 다시 심봉사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너나할것 없이 울었는듯 싶다-
7.5도 기울인 회전무대가 돌아가는 무대와 그를 이용한 연출은 극을 훨씬 더 인상깊에 만들어 준것 같다. 천장까지 반사되는 조명들은 바다의 느낌을 실감나게 내주기도 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앞에서부터 양 옆으로, 뒤까지 왔다갔다 하던 스테레오 음향도 그러하고. 심봉사가 물에 빠지는 장면에선 무대 가운데가 불쑥 들어갔다가 언제 그랬냔듯 돌아오고, 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드는 장면에서의 귀가 터질 듯한 음악과 번개를 표현한 조명은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청이의 간청으로 맹인잔치를 여는 칙령이 내려질때 무대 한가득 방이 펼쳐지며 눈을 압도하고,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에선 갑자기 무대가 확 밝아지는 연출도 감각적이었다.
창극의 대중화와 정형화를 위한 극이라는 설명답게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기 위한 면도 많이 보였다. 황사가 심하니 얼른 떠나자는 심봉사의 말도 그러하고 "짜증 지대로다~" 하던 한 봉사의 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웃었다. 황성가는길 봉사들의 장기자랑 장면도 재미있었다. 온갖 사투리와 각 지방의 아리랑 그리고 함께 들썩이며 흥겹게 부른 각설이 타령...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겠지만, 빽덕어멈 같은 캐릭터는 얄미우면서도 매력적이다.
서양 악기들과 국악기의 하모니도 너무 좋았다.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반복되면서, 차분하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음악. 우리네 한(恨)의 정서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극에는 우리말 자막과 함께 영어 자막이 동시에 제공되었다. 창이란게 우리 전통적인 것이라, 옷갖 은유와 비유와 예시와 상징들이 섞여있었는데, 영어자막을 보니 정말 직설적이더라. 극을 보는 내내 우리 창극과 우리 전통 악기를 사용한 공연이고, 간단하게지만 궁중 의식 장면도 나오고 해서 외국인들이 보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그들이 보아도 그런 메타포와 정서는 전혀 느끼지 못할것이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안숙선 명창이 도창을 맡으셨는데, 그분의 창을 직접 들은 것도 영광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서 인지, 창극이라서인지, 할머니할아버지들부터, 꼬맹이 아이들까지, 가족들끼리 보러온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내 옆자리서 보던 7,8살쯤 돼 보이는 꼬마 아가씨는, 얼마나 집중해서 보던지. 3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몸한번 뒤틀지 않고, 가슴아픈 장면에서는 울기까지 하면서 보는데, 너무 예뻤다 ^^
극이 담고 있는 정서가 느껴지고 이해되는것을 보니 나도 어쩔수 없는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의 대본을 사용한 뮤지컬들을 볼때 느낀 재미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앞으로 창극에도 푹 빠지지 않을까 싶다-ㅋ
"매우 세련된 두 명의 무용수들은 서로에게서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발견은 놀랍도록 감동적인 것이었다." -The Guardian, 영국
"눈부실 정도로 황홀한, 서로 다른 두 정신과 육체의 특별한 만남" -The Times
전설적인 발레리나 실비 길렘. 인도 전통춤 카탁의 대가 아크람 칸.
내가 이 공연을 처음 접했을때 알고 있던건 단 이 두문장 뿐이다. 공연을 보러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잠시 찾아보면서 이 두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하나같이 찬사를 보내는 평가들. 각자의 솔로안무도 그러하지만 함께하는 2인무(파드되)에 대한 리뷰는 극찬 일색이었다. 찾아보면 볼수록 기대감은 커져만 갔고, 실비만이 할 수 있다는 6시 자세를 사진으로 본 순간부터는 그들을 얼른 보고 싶어서 몸이 달아올랐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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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공격 그리고 충격
실비 길렘과 아크람 칸의 ‘신성한 괴물들’
MAPA 3월 글|김우정 기자
20여 년 전 발레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우상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였다. 다이어리와 지갑 속에는 바리시니코프의 사진이 한 장쯤 들어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영화 <백야>에서 보여준 열 한 바퀴의 턴을 떠올리며 그를 영웅시 생각했던 때였다. 외국 무용수들의 사진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에는 남대문 시장이나 광화문 뒷골목에서 영문판이나 일어판 잡지 <Dance>를 찾아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많이 변해도 한참 변했다. 일단 인터넷 하나 만으로 해외 발레단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쉬워졌고, 그 안에서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맘껏 구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인터넷 검색창에 ‘발레’라는 단어 하나만 쳐도 놀랄만한 분량의 발레리나 사진들이 주루륵 나타난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발레’라는 폴더를 만들어 수십 장 수백 장의 사진을 담아두며 감상을 하고 있다.
서론을 길게 이야기 한 이유는 바로 발레리나 실비 길렘 때문이다. 어떤 동작을 해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기와 가녀리지만 근육으로 다부져진 몸매, 그리고 곧 꺽일 듯 기가 막히게 나온 발등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유연성에 더해진 그녀만의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실비 길렘은 이 시대 발레리나를 꿈꾸는 학생들의 우상이다. 인터넷을 떠돌다보면 그녀의 사진 밑에는 종종 “과연 인간인가?”라는 리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조선수를 꿈꿨던 11세의 실비 길렘은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에 입학했고, 그것은 그녀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 1981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한 실비 길렘은 루돌프 누레예프의 후견 아래 최고의 무용수로 성장했고, 350년 전통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인 19세라는 나이로 최고 위치인 '에뚜알'로 승격되며 전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현재 클래식 레퍼토리에서 모던 레퍼토리로 활동을 넓히기 위해 영국 로열 발레단에서 객원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세계적인 현대무용 안무가와 함께 작업하며 현대무용가로서의 활동도 겸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발레리나 실비 길렘이 한국을 찾는다. 그녀가 첫 번째 한국방문에서 보여줄 영역은 현대무용이며, 이번 공연의 동반자는 영국의 현대무용가 아크람 칸이다. 지난 2004년 제7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청되며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아크람 칸은 인도의 전통무용 ‘카닥’을 현대무용과 접목시켜 ‘컨템포러리 카닥’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며 현대무용계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두 사람의 공연은 단지 두 무용가의 만남에 그치지 않는다. ‘신성한 괴물들’이라는 부제를 갖고있는 이번 프로젝트 공연은 각자의 솔로와 듀엣으로 이루어져 두 무용수가 지닌 각자의 예술관과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으며, 두 사람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또 하나의 색다른 예술적 충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초연된 바 있는 ‘신성한 괴물들’에서 실비 길렘과 아크람 칸은 그들의 어릴적 기억에 대해 털어놓을 참이다. 두 무용수의 무용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많이 닮았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수의 길을 걸었던 실비 길렘과 아크람 칸은 클래식(전통)과 모던(현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해왔고,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와 작업들을 통해 새로움에 또다른 새로움을 만들어왔다. 결국 이번 공연은 독창적인 목소리를 지닌 두 무용수의 실험정신이 탄생시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인 실비 길렘의 솔로를 위해 대만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의 예술감독 린 화 민이 '실비의 솔로'를 안무했다. 특히 린 화 민은 동양의 전통 무술 등을 현대무용에 접목시켜 새로운 스타일의 현대무용을 창출한 대만의 대표 무용수로 이번 작품 역시 그의 스타일을 십분 활용했다. 이 작품에서 실비 길렘은 아시아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 작품을 초연했을 당시 동양의 신비한 서정미를 완벽하게 빚어냈다는 호평을 받은 바있다. 두 번째 ‘아크람 칸의 카탁 솔로’는 카탁의 대가 가우리 샤르마 트리파티가 아크람을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빠른 스피드와 숨가쁜 호흡으로 연결되는 강한 힘을 보여줄 것이다.
이 공연을 봐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실비와 아크람의 2인무'라고 할 수있다. 실비 길렘이 지닌 유연함과 우아함이 아크람 칸의 강력한 힘과 스피드와 만나 공격과 대립을 통해 화합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의 무용 언어를 이해하고 서로의 몸을 이용해 새로운 문자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두 사람을 왜 ‘신성한 괴물들’이라는 주제로 엮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두 괴물들에 의해 창조된 다양한 무용언어와 함께 음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무대인 그 신성한 곳. 그곳을 경험하는 일은 우리에게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님을 확신한다.
실비길렘. 그녀는 41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유연했고, 힘이 넘쳤다. 항상 발레는 우아하고 여성스럽고 조심스럽다고만 생각해왔던 터라 그녀의 감정적이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1인무를 보면서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듣던대로 타고난 체형과 유연성을 보면서, 그리고 무대가 꽉- 차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저 사람이 발레를 하면 대체 어떨까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그녀는 춤을 추는 도중에 몇번, 환하게 웃었는데- 이렇게 말해서 조금 죄송하기도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이 너무 귀여우셨다. ^^
아크람 칸. 작고 힘차며 빠르다고 했다. 앞선 실비의 무대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열정적이었다. 분명히 첼로와 바이올린, 북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꼭 살타첼로의 magnum gayagum이 가야금의 느낌이 나듯, 굉장히 동양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팔다리를 제어하는 듯한 안무에는 위트도 있었다.
독백이 있은 후 2인무가 있었다. 실비는 무대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냥 춤을 추기만 하면 되었을 때는 자신의 주위에 캐릭터나 역할들이 자신을 보호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진정한 실비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실비가 발을 땅에 닿지 않고 두 사람이 한동안 함께 춤을 췄는데, 아아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나왔었다ㅡ 그 전에 딱딱 끊어가며 재밌게 추던 춤에선 깔깔 웃기도 하고.
뒷부분에서 실비가 온몸으로 아름다움/행복을 느낀다는 뜻의 emerveille를 설명해주는 대목은, 두사람이 투닥거리는 것이 (물론 그것도 대본에 있는 거겠지만,) 꼭 그 자리에서 그러는 것처럼, 친밀했다- (사족이지만, 아아 역시 프랑스 사람의 불어로 말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반하게 된다.+_+)
발레건 카탁이건 어떤 춤이든, 무용에 대한 나의 사전지식은 전무하다. 보는 눈도 없다. 하지만, 오늘 본 것이 쉽게 볼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다는 건 알겠다. 괜히, 나름대로 뭔가 느꼈답시고 이렇게 뭘 적은게 부끄러울라 하네.ㅋㅋ 그래도, 내가 그렇게 느낀거니까.ㅎ
75분 내내, 앞사람에 조금씩 가리는 것도, 오죽하면 무대의 한쪽을 보느라 다른족을 놓치는 것도, 한순간순간이 아쉬웠다. 4번의 커튼콜. 그래도 남은 아쉬움. 하지만 너무나 좋은 공연을 본 후의 꽉찬 마음.
매우 뒤늦다.ㅋㅋ 다담 사람들이랑 함께 본, 유정아 선생님 추천 작품. 아는 것도 하나 없으면서, 무작정 보러 가겠다고 했다.ㅋ 나중에 선생님과 무대 뒤에도 가 보고 +_+b
처음으로 본 현대 무용이었는데, 혼자서 열심히 의미를 부여하며 잘 보았다 ^^ 아는만큼 보이는 거니까, 놓치고 지나간게 엄청나게 많겠지만, 그리고 잘못 본 것도 무지 많을테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사전지식 없이 순전히 내 가슴으로 느낀거니까 그것도 나름대로 소중하지 않나 싶다.^^ 음.. 돌이켜 생각하다 보니, 다시 관람욕이 불타오르는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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